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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지금 행복하다 (112)
하루하루 사는 법
가을날, 아파트 화단에서 피어나는 죽단화 꽃. 죽단화의 계절은 5월이건만 가을날에 어인 일인지... 불현듯 봄날이 찾아온 듯 반가워서 잠깐 서서 노란꽃을 바라보았다. 예쁘다. 꽃이 계절을 잃는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어딘가에서 읽은 것을 떠올려보면 생존의 위기감 때문에 평소 꽃피우는 계절이 아닌 때에도 꽃을 피운다고. 지난 여름 기나긴 장마와 몇 차례의 태풍에 죽단화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것일까? 살려고 애쓰는 생명의 모습은 처절하지만 감동적이고 기특하다. 보면서 나도 사는 데 좀더 애써봐야 하나? 잠시 생각했다.
아파트 정원도 열매가 익어가는 가을로 접어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대추나무에도 감나무에도 열매가 초록빛으로 매달려 있었다. 기나긴 장마와 태풍이 훑어간 후인 데도 대추나무와 감나무는 열매를 많이도 달았다. 아직 초록빛이라서 붉게 익으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대추도 감도 모두 싱싱해 보인다. 힘든 계절을 거쳐내고도 살아남은 나무들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잎도 열매도 작년보다 더 싱싱해 보인다. 나의 기분 탓인가? 올해도 대추와 감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고마운 마음이 크다. 기후 온난화 때문인지 기후는 한 해 한 해 변덕을 부린다. 그 변덕을 견뎌내기가 인간도 자연도 모두 힘들지만 인간이 야기한 기후 온난화이니 인간은 참고 견뎌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간으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는 다른 생물들..
그동안 책을 기증하고 주고 버리기를 계속해 왔지만 아직도 우리집에는 책이 너무 많다. 처리할 수 없는 책이 많은 탓이다. 책을 처리할 수 없는 이유는 아직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읽지 못해서 짐으로 지고 살아가는 한심스러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읽지도 못할 책을 왜 그리 산 걸까? 최근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은 나의 정리욕구를 좀더 자극하는 것 같다. [신박한 정리]에서처럼 짧은 시간에 버리고 정리하는 것은 내 성격에 맞지 않다. 지금껏 수 년째 집안의 물건들을 버리고 정리하기를 계속해왔다. 정리의 막바지에 책 때문에 제동이 걸렸다. 이번에는 작심을 했다. 일단 책장 하나의 책을 모두 꺼내고 그 자리에다 밥그릇, 접시, 컵, 차 주전자, 달걀잔, 수저받침 등을 놓았다. 싱크대 선반이 너무 복잡해서..
한 달이 좀 못되는 시간동안 거의 집안에서 지내면서 가끔씩 도서관을 다녀오거나 근처 약국과 편의점에 볼일을 보러 갔을 뿐, 바이러스가 두려워 감히 산책은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햇살에 이끌렸는지 하천가로 걸음을 옮겼다. 집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동안에도 나무들, 풀들은 변함없이 계절을 살아내고 있었다. 벚나무의 잎들이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갈색빛을 띤 잎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닥에는 이미 자신의 시간을 끝낸 잎들이 뒹굴고 있었다. 낙엽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래, 가을이 왔구나.' 싶었다. 아직 낮 시간의 기온은 25를 웃돌고 있지만 새벽녁은 서늘하다. 이제 나무들은 하나 둘 아름다운 빛깔로 단풍이 들테지. 비가 그치고 햇살이 눈부신 날에는 멀리 떠나지 못해도 단풍이 궁금해..
작년 9월은 마음이 무너지던 달이었다. 하천에서 돌보던 집오리들이 차례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한 달 사이에 5 마리의 집오리들이 죽음을 맞다니! 도대체 누가 집오리들을 죽였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농원은 그 어떤 집오리보다 신중하고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생존 의지를 불태우던 강인한 오리였다. 다섯 오리들 가운데 제일 마지막까지 상처입은 몸으로 홀로 남았다. 결국 작년 9월 마지막 날 죽음을 맞은 걸로 추정된다. 단호박을 좋아했었는데... 어제는 농투가 죽은지 1년 되던 날이었다. 농투는 집오리들 가운데 가장 붙임성 있는 오리였다. 특히 멸치를 좋아해서 멸치를 달라며 조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누룽지를 먹다가 누룽지를 좋아했던 농투가 생각나서 울컥했다. 야일은 농원이나 농투에 비해 어린 오리였..
하천에서 돌보던 집오리 '농투'가 죽은 지 꼭 1년째 되던 어제, 내게 날아온 작은 선물, [아홉번째 여행]. [아홉번째 여행]이 무슨 뜻인가? 갸우뚱했지만, 고양이가 아홉생을 산다고들 해서 그 아홉생을 살고 그들의 안식처로 떠났길 바라는 마음에서 작가 신현아는 이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키우던 반려묘도, 거리에서 만나는 길고양이들이 모두 차례로 죽음을 맞고 이 세상을 떠난다.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길은 축제이길, 또 떠난 길 끝에는 편안한 쉼터가 있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그림책을 읽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낮은 채도의 그림이 쓸쓸하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래, 빛 바랜 오래된 사진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그림책을 덮는 데 눈물이 핑 돈다. 1년 전 내 곁을 떠난 집오리들이 생각나..
올여름, 백섬(사진 중간)이 죽었다. 비가 내리는 여름을 견디지 못한 것 같다. 지난 겨울에는 물배추가 죽었다. 여름날 푸릇푸릇 번성하는 물배추가 겨울에 모두 죽어버렸다. 백섬도 물배추도 모두 친구가 선물해준 화초였다. 그래서 더욱 아쉽기만 하다. 평소에 잘 키우지 않는 화초라서 화초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해서 좀더 잘 키우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화초를 키우다 보면 잘 자라기도 하고 잘 자라지 못하기도 하고 또 죽기도 한다. 하지만 죽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럼에도 도저히 살리지 못하는, 역부족인 상황이 온다. 예전에는 화초가 죽으면 무척 상처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사람이건 식물이건 동물이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때가 있다는 것을. 그것이 내 ..
올여름 산세베리아는 제철을 만난 듯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 산세베리아는 2년 전 겨울에 동생이 남겨놓고 떠난 화초들 가운데 하나다. 동생이 준 산세베리아는 두 포기였는데, 빼빼 마르고 시들거리는, 거의 고사하기 일보직전의, 형편없는 꼴을 하고 있었다. 작년 여름에 조금 자라고 기운도 좀 차린 것 같았지만 여전히 '난 아직 적응 못했어.' 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올여름 갑자기 쑥 자라났다. 그리고 각각 어린 싹들을 한 포기씩 더 꺼내 놓았다. 마침내 이곳을 내 살 곳으로 인정하겠다는 듯이. 산세베리아는 올 여름 무려 54일간 이어진 긴 장마의 흐리고 축축한 날씨에도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어쩌면 햇살은 그리 필요치 않고 대기 중 습기가 많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 동생이 돌아와서 이 산세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