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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지금 행복하다 (112)
하루하루 사는 법
풀 잎 위에 가만히 내려앉은 나비를 발견하는 기쁨! 움직임이 많은 나비를 잡기도, 사진을 찍기도 어렵지만 이렇게 바라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도 않다. 어릴 때부터 나비의 이미지를 사랑했던 나. 초등학교 시절, 나비가 너무 예뻐서 손으로 잡은 적이 있었다. 무척 불행한 경험이었다. 내가 나비 날개를 잡는 순간, 나비의 날개가 뚝 떨어져 버렸으니! 그때의 놀라움, 공포, 안타까움, 슬픔... 그 복잡적인 감정이란... 의도하지 않은 살생이었지만 나는 내 행동이 무척 부끄러웠다. 그때 이후 나비를 잡으려 시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나비가 어떻게 내 작은 손에 잡혔을까?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청소년기에는 나비에 대한 사랑을 우표수집으로 풀었던 것 같다. 나비가 나오는 우표들을 모아 ..
앗! 코스모스다! 올해 처음 만난 코스모스다. 코스모스를 7월 첫 날 만나다니, 반가웠다. 코스모스는 항상 내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꽃이라서 더 반갑다. 살아 생전 어머니는 가장 좋아하는 꽃이 코스모스라고 이야기했었다. 세상에 꽃이 얼마나 많은데 제일 좋아하는 꽃이 코스모스였을까? 어쩌면 어머니의 마음 속에는 코스모스를 닮은 갸녀린 소녀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항상 어머니였지만 그 어머니도 꿈많은 소녀였던 적이 있었을테고 미처 꿈을 이뤄보기 전에 여러 아이의 어머니 노릇에, 며느리와 아내 노릇을 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갔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코스모스를 닮은 소녀가 내내 머물러 있었던 것을 딸인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겠지. 코스모스꽃을 보니 다시금 어머니를 추..
요즘 이른 아침에 산책길에 나섰다가 잠깐 앉아서 쉬는 벤치 앞에는 어린 플라타너스가 있다. 날씨가 나날이 더워질수록 플라타너스는 나날이 더 푸른 잎을 더 많이 달고 더 크게 키워 푸르러진다. 아마 매일 조금씩 플라타너스의 몸집도 커지고 키도 커지고 있을 것이다. 날마다 바라보니 그 모습이 크게 달라지고 있진 않지만 플라타너스는 쉬지 않고 살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다. 이른 시간인 데도 햇살이 제법 따갑다. 플라타너스가 앞에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플라타너스를 쳐다보고 있으면 눈이 시원하다. 잠깐의 휴식시간 동안 플라타너스는 침묵의 동반자가 되어준다. 코로나 19로 위축된 일상 속에서 플라타너스는 든든한 안전한 존재로 곁에 머물러 준다.
친구가 보내온 택배 속에는 이렇게 멜론 2개가 들어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있어 이 친구도 작년 이래 얼굴을 못 보고 있다. 잘 지내고 있겠거니 생각만 하고 있던 참이었다.만나지 못하면 마음이 멀어지게 마련인데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음을 알려온 멜론, 고맙다. 멜론은 프랑스에 머물 때는 전채요리로 먹곤 했지만 너무 달아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 과일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지금껏 멜론을 사 먹어본 적은 없다. 친구 덕분에 올여름에는 멜론맛을 본다. 멜론은 프랑스에서 먹었던 그 맛과는 다르다. 아마도 햇살이나 기후, 비, 토양과 같은 조건이 달라서인가 보다. 멜론향이 나는 참외같다고 할까.그리 달지 않다. 하지만 시원하고 향긋하고 물이 많아서 산책 후 먹기에 좋다. 멜론을 먹으며 평소..
아파트 화단에 수국꽃이 만발했다. 수국꽃은 브르타뉴의 여름을 추억하게 한다. 소박한 단독가옥들의 정원마다 차지하고 피어 있는 한 무리의 수국꽃. 특히 푸른 하늘 아래 파란 칠을 한 집과 수국꽃이 얼마나 잘 어울리던지! 요즘 하천가를 걷다보면 만발한 접시꽃이 곳곳에서 눈길을 끈다. 접시꽃도 수국꽃처럼 브르타뉴의 여름를 떠올리게 하는 꽃이다. 집앞에, 골목길을 따라 피어 있던 다양한 색깔의 접시꽃. 분홍꽃, 진분홍꽃, 빨간꽃. 접시꽃을 발견할 때마다 사진 셔터를 누르곤 했었다. 지금은 코로나 19로 인해 거의 집과 하천변만 오가며 살고 있지만 과거의 시간만은 자유로이 꺼내 펼쳐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여름날, 브르타뉴의 소박한 집 앞에 피어 있는 풍성한 수국꽃과 커다란 접시꽃에 대한 기억이 우울을 걷..
시에서 주는 재난기본소득을 받기 위해 동네 행정복지센터에 들렀다. 생각보다 붐비지는 않았다. 시재난기본소득은 대부분 찾아갔는지 줄 설 필요도 없었다.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간단한 신청서를 제출하니5만원 카드를 준다. 9월 30일까지 사용하라고 한다. 카드를 받아 출입구를 나와 뒤를 돌아보니 창에 쓰여진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겠지만 오늘을 가장 행복한 날이 되도록 하루를 꾸려가는 자세는 중요하다 싶다. 내일이 주어질지 아닐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삶의 불확실성을 분명하게 인지한다면 오늘에 최선을 다하게 되기 마련. 동네 마트에 들러 정부재난지원금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사들고 돌아왔다. 온국민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꾸릴 수 있는 기본소득이..
하천가에는 뽕나무가 많다. 6월초, 뽕나무의 열매, 오디가 하나 둘 익어간다. 작년 6월에는 집오리들 밥을 주러 하천가에 다니면서 오디를 많이 따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뽕나무의 오디가 맛이 있는지를 알아볼 겸 뽕나무를 이동하며 오디를 따먹기도 했다. 그리고 제일 맛좋은 오디가 열리는 뽕나무를 찜해두기도 했다. 어제 살펴보니, 찜해둔 뽕나무의 오디는 아직 익지 않았다. 그 나무의 오디는 유달리 작다. 산책하다 보면 요즘 오디를 따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아직 오디 따기에는 조금 이른 때인데도. 같이 산책하던 친구는 마스크를 벗고 오디를 따서 맛을 본다. 그리고 내게도 오디맛을 보라며 권한다. 잘 익은 오디는 달다. 이미 내 손이 닿을 만한 가지의 오디는 다른 사람들의 차지가 되었다. 나는 오디를 따지 ..
나무계단 옆 콘크리트 사면에 큰금계국 노란꽃이 만발했다. 코스모스를 닮은 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으면 예쁘다. 큰금계국은 토착식물을 위협하는 식물로 지탄을 받고 있지만 도시의 황폐화된 공간에서는 큰금계국이 제 몫을 다한다.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바로 아래 콘크리트 벽면에도 큰금계국이 자리를 잡았다. 마치 노란꽃 꽃꽂이를 한 것 같다. 평소라면 무척 황량했을 법한 곳인데, 요즘은 큰금계국 꽃 덕분에 좀더 눈길과 마음이 가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도로가 산책길에도 큰금계국이 군락을 이루었다. 역시나 이곳도 콘크리트 사면이라서 보기가 흉한 곳이었는데 큰금계국이 자리잡아 한결 보기가 좋아졌다. 회색빛 도시의 산책길에 큰금계국 무리가 노란불을 밝혀주는 듯 하다. 식물도 사람도 제 자리가 있는 법이다. 잘못 자리잡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