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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사는 법
긴 장마가 물러나고 한낮의 기온이 33도에 이르는 무더운 날이 시작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해야 할까? 코로나 19의 확진자가 하루 300명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났고 전염병의 기세는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바깥 외출이 두려운 하루하루가 다시 시작되어 우울한 나날이다. 열알레르기,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30도가 넘는 한낮에는 바깥 외출이 힘들다. 오전이나 오후에는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게 되니 산책이 불안하다. 할 수 없이 새벽에 하천가로 나섰다. 6시가 못 된 시간, 박무가 있는 새벽이다. 파란 나팔꽃이 웃는다. 미국 나팔꽃이다. 오랫동안 내린 장마비로 잎은 병이 들었지만 꽃의 미소는 여전하다. 반갑다. 파란 달개비의 푸른 빛도 상큼하다. 잎은 벌레들에게 뜯겨 구멍이 송송 뚫렸어도 꽃..
행운목 곁에 돋아난 이 녹색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행문목의 싹인 것 같다. 그동안 그리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장마비가 계속되는 동안, 이 어린 싹이 조금씩 조금씩 살그머니 자랐나보다. 햇살이 없어서 덩굴식물은 병이 들고 썪기도 했지만 오히려 행운목과 벤자민은 더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런 싹도 자란 거겠지. 장마비가 준 선물인가? 혼자 생각해 보았다. 장마비가 떠나면서 안겨다 준 어린 싹으로 생각해야겠다. 이 어린 싹은 정말 올여름의 행운이다.
출판사 '오후의 소묘'에서는 계속해서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책을 출간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노래하는 꼬리]라는 그림책이 나왔다. 노래하는 꼬리? 제목부터 궁금해진다. 아주 작은 마을에 사는 꼬마 이반에게 어느날 갑자기 꼬리가 자라났다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는 상상력을 풀어놓는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를 더 빛나게 하는 데는 비올레타 로피즈의 그림이 한 몫하고 있다. 무채색의 뎃생에다 붉은 색을 가미했다. 그래서 붉은 색이 강렬한 효과를 낳았다. 내용의 정서를 잘 담아내는 비올레타 로피즈의 그림들은 이번에도 당혹스러운 상황의 분위기를 붉은 색으로 잘 표현했다. 그런데 도대체 노래하는 꼬리는 무엇일까? 낯설어서 당혹스럽지만 유쾌한 느낌을 준다. 결국 이 낯선 꼬리는 작은 마을 사람들 모두를 행복하게..
어제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파란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무 아래 빽빽히 자라있는 강아지풀이 눈에 들어왔다. 강아지풀은 내가 좋아하는 풀이기도 하지만 봄에만 해도 여기에는 민들레, 선씀바귀 꽃들이 피어 있던 곳이었다. 8월에는 강아지풀이 이 자리를 차지했네. 도시의 가로수 곁 비좁은 땅에 계절따라 자리를 나눠쓰면서 이렇게 수많은 생명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이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강인하고 끈질긴 풀의 생존력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생명이 아름답다. 언젠가 다들 생명을 소진해 죽음을 맞더라도 말이다.
올해 무화과는 처음이다. 겉이 녹색인 걸 보니 완숙 무화과는 아니다. 배달로 받는 무화과는 거의 항상 덜 익은 상태로 온다. 무화과를 반으로 잘라보니 속이 붉고 붉은 부분을 감싸는 흰 부분, 그리고 녹색의 겉껍질. 보기가 좋다. 한 입 베어무니 역시 완전히 익은 무화과가 아닌 풋익은 맛이 난다. 그래도 향긋하고 은은하게 달콤하고 부드럽고 물기가 많다. 나는 한 해에 한 번 무화과 맛을 보고 간다. 프랑스 기숙사 정원의 무화과 나무에 대한 추억 때문이랄까. 친구들과 무화과 나무 아래 놓인 테이블에 둘러앉아 수다를 떨다 보면 농익은 무화과가 테이블 위로 뚝뚝 떨어지곤 했다. 그때 나눠 먹었던 무화과의 달콤한 맛에 대한 행복한 기억은 지금도 내 몸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이후 더는 그런 맛의 무화과를 맛보지 ..
매미가 운다. 폭포수가 흐르는 듯한 소리. 말매미소리다. 매미가 울면 비가 그친 것이라는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오늘 깨어난 이후 계속해서 매미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비는 멈춘 것이 분명하다. 이제 이대로 비는 끝이 나는 걸까? 장마비가 끝없이 쏟아졌다 멈췄다가 계속되는 요즘. 어제는 정말 온종일 빗물에 잠겨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망창에 붙어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가 반갑다. 매미야, 너네들도 고생이 많구나. 이 비 속에서 짝을 찾아야 하니 얼마나 힘들까? 매미도 오리도 사람도 모두 생존하기가 힘든 나날들이다. 말매미의 폭포수 소리 사이에서 맴맴맴맴 매애~앰하는 참매미 소리도 들린다. 그 어떤 음악보다 오늘은 매미들의 합창을 좀더 즐기고 싶다.
요즘 아침마다 베란다 창을 열고 파란 나팔꽃은 피었는지, 하얀 표주박꽃은 피었는지 살펴보곤 한다. 작년 봄부터 가을까지 파란 나팔꽃을 세는 것이 아침의 의례처럼 되었었는데, 올 여름에는 파란 나팔꽃은 열심히 세지 않고 피었나 피지 않았나 확인만 하고 내 관심은 온통 표주박꽃으로 이동했다. 표주박 씨 하나에서 싹이 든 덩굴이 베란다 천정을 덮었다. 올해는 나팔꽃 씨를 여러 개를 뿌렸기에 나팔꽃 덩굴은 작년보다 더 많고 무성해졌다. 그런데 장마비가 길어지는 바람에 햇살이 부족해서인지 나팔꽃도 표주박꽃도 피질 않고 잎까지 병들기 시작하자 올해 덩굴꽃 보기를 포기했었다. 포기하고 나니 덩굴을 돌보지 않게 되고 덩굴은 마음대로 뒤엉켜서 정글을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갈색빛의 낯선 무엇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
장마비로 찌푸린 나날들을 잘 견딘 우리들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하늘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하늘의 맑고 깨끗한 푸른 색 위에 펼쳐진 깃털구름들. 매혹적인 광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구름과 어우러진 하늘이 묘기를 펼치는 동안 대기가 투명해서인지 그 장관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토록 깨끗한 날이라니! 맑은 날이라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청명함. 두터운 구름 아래 하늘의 푸른 조각은 아주 조금이라고 해도 그 푸르름이 구름의 기세에 밀리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하늘은 조금씩 푸르름을 잃고 뿌옇게 그야말로 은근한 하늘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흰구름도 사이사이 짙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다시 비가 오리라 예고라도 하듯이. 하늘의 선물은 그 어떤 전시회의 작품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그 황홀함과 벅차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