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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사는 법
오늘은 11시가 넘어 하천가에 산책을 나갔는데, 전날부터 내린 억수같은 비, 그러고도 그치지 않고 부슬부슬 이어지던 비 때문이었는지 파란 나팔꽃이 아직 지지 않고 있었다. 우리 하천가에는 두 종류의 파란 나팔꽃이 자란다. 미국 나팔꽃과 애기나팔꽃. 사진 속의 나팔꽃은 세 갈래가 난 잎모양을 보니 미국 나팔꽃이다. 미국 나팔꽃, 애기 나팔꽃, 이 두 종류의 나팔꽃은 내 아파트 베란다에도 덩굴을 만들었다. 작년에는 여름이 충분히 더웠고 마른 장마가 이어졌던 덕분인지 햇살이 그리 충분하지 못한 베란다에도 초가을까지 파란 나팔꽃을 매일매일 볼 수 있었다. 매일 아침 파란 나팔꽃을 볼 생각으로 일찌감치 잠자리를 떨쳐내곤 했었다. 올봄에도 지난 여름을 기억하며 파란 나팔꽃 씨를 뿌렸다. 씨앗은 여러 싹을 틔웠고 싹..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올여름은 장마가 무척 길다 싶다. 어제 비가 내리지 않은 틈을 타서 오전에 하천가 산책을 나갔다. 인도교에서 하천을 내려다 보았다. 장마비로 온통 누렇게 흙탕물이 되었던 하천이 좀 맑아졌다. 물 속에 잠겼던 돌들도 고개를 내밀었다. 사진 속 하천 왼편에 차례로 줄지어 있는 돌들. 내 시선에 가까운 쪽부터 하나, 둘, 셋, 넷. 그런데 세 번째 돌 위에 누가 있다. 오리일까? 줌을 당겨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맨 눈으로는 제대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분명 오리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오리 한 마리만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오리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인가? 아니면 무엇? 돌아와서 살펴보니 오리 한 마리도 거북이 두 마리! 사진 상으로 거북이 한 마리는 분명하게..
낮기온이 20도라니! 장마비는 여름의 무더위를 순식간에 걷어갔다. 그래서 점심식사를 한 후 느긋하게 산책길에 나섰다. 우산을 받쳐들고. 평소라면 플라타너스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겠지만 비바람이 부는 통에 그냥 잠시 서 있었다. 어느새 꽃밭은 부처꽃이 만발했다. 나비도 비둘기도 보이질 않고 부처꽃만 바람에 흔들린다. 이쪽으로 누웠다 저쪽으로 누웠다... 부처꽃도 시원해서 춤추는 것만 같다. 비바람에 우산을 들었지만 신발도 겉옷도 모두 젖고 말았다. 그래도 시원하니 좋다.
메리골드는 참으로 먼 곳에서 온 꽃이다. 중남미로부터 이주해왔으니 멀리도 왔다. 붉은 꽃잎이 태양 아래 강렬하다. 아직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중남미. 메리골드가 내게 중남미를 느끼게 한다. 강렬, 열렬, 화끈함... 그런 단어가 어울릴 것 같은 곳. 언제부터였을까? 여름날 도시의 화단에 메리골드가 낯설지 않게 된 것이. 메리골드는 색깔도 형태도 다양해서 그 화려함에 눈이 부시다. 장을 보러 갔다가 근처 화단에서 본 메리골드. 꽃이 예뻐서 눈길을 주었다. 이미 이 낯선 꽃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먼 나라가 훌쩍 내게 가까이 다가온 듯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풀밭에는 토끼풀 흰꽃과 빨간 토끼풀 붉은 꽃이 희고 붉은 빛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개망초 풀밭, 아니 꽃밭으로 바뀌었다. 조그맣고 하얀 개망초꽃들이 만발하니까 잔잔한 하얀 점들이 찍힌 듯하다. 개망초꽃 하나하나는 보잘것없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모여 피니 녹색 바탕에 흰 점이 가득한 점묘파 그림처럼 충분히 감동적인 여름풍경을 만들어낸다. 보라빛 히드가 만발한, 프랑스의 여름 들판 풍경에 감탄했던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하얀 개망초꽃이 만든 여름 풍경도 그에 못지 않다. 이 풍경은 멀리서 바라봐야 훨씬 더 아름답다. 아름다움의 발견이 주는 행복감. 벅참.
지나가다가 만발한 무궁화꽃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낡은 아파트의 좁은 정원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서 있는 무궁화. 무궁화나무를 살펴보니 무척 건강해보인다. 아파트가 재개발된다면 이 무궁화나무는 아파트와 함께 사라지겠구나,는 생각에 아쉬움이 몰려온다. 하지만 뭐 미리 아쉬워할 필요 있을까? 현재 주어진 기쁨을 향유하면 될 일을... 허름한 아파트의 손바닥만한 화단에서 자라는 무궁화나무, 이 나무는 분명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여름마다 찬란한 꽃들을 건네며 기쁨을 안겨주었으리라. 그리고 나처럼 길가는 사람에게도 아낌없이. 아파트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무궁화가 내내 건강하길 빌어보았다. 당분간 이 길을 오고 가며 좀더 이 무궁화의 아름다움에 취해봐야겠다.
군산에서는 집 정원에 무화과 나무가 있었다. 군산은 전북이지만 무화과 나무가 야외에서 자랄 정도로 기후가 온화한가보다. 그곳에서 무화과나무를 발견하고 기뻤다. 남프랑스 기숙사 정원의 무화과나무를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름날 기숙사 친구들과 무화과 나무 아래 놓인 탁자에 둘러 앉아 수다를 떨다가 잘 익어 떨어진 무화과 열매를 간식으로 주워먹기도 했다.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따뜻하고 유쾌한 시간이 달콤한 무화과가 있어 더 좋았다. 잘 익어 탁자 위에 저절로 떨어져 박살이 난 무화과는 얼마나 달달했던지! 잊을 수 없는 행복한 기억이다. 올여름에는 무화과를 사먹어야겠다. 그런데 한국에서 사 먹은 무화과는 그때 남프랑스에서 먹었던 무화과만큼 단맛이 나질 않았다. 완전히 익질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때처럼 웃고 떠들..
풀 잎 위에 가만히 내려앉은 나비를 발견하는 기쁨! 움직임이 많은 나비를 잡기도, 사진을 찍기도 어렵지만 이렇게 바라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도 않다. 어릴 때부터 나비의 이미지를 사랑했던 나. 초등학교 시절, 나비가 너무 예뻐서 손으로 잡은 적이 있었다. 무척 불행한 경험이었다. 내가 나비 날개를 잡는 순간, 나비의 날개가 뚝 떨어져 버렸으니! 그때의 놀라움, 공포, 안타까움, 슬픔... 그 복잡적인 감정이란... 의도하지 않은 살생이었지만 나는 내 행동이 무척 부끄러웠다. 그때 이후 나비를 잡으려 시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나비가 어떻게 내 작은 손에 잡혔을까?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청소년기에는 나비에 대한 사랑을 우표수집으로 풀었던 것 같다. 나비가 나오는 우표들을 모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