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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0/08 (10)
하루하루 사는 법
올여름, 백섬(사진 중간)이 죽었다. 비가 내리는 여름을 견디지 못한 것 같다. 지난 겨울에는 물배추가 죽었다. 여름날 푸릇푸릇 번성하는 물배추가 겨울에 모두 죽어버렸다. 백섬도 물배추도 모두 친구가 선물해준 화초였다. 그래서 더욱 아쉽기만 하다. 평소에 잘 키우지 않는 화초라서 화초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해서 좀더 잘 키우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화초를 키우다 보면 잘 자라기도 하고 잘 자라지 못하기도 하고 또 죽기도 한다. 하지만 죽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럼에도 도저히 살리지 못하는, 역부족인 상황이 온다. 예전에는 화초가 죽으면 무척 상처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사람이건 식물이건 동물이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때가 있다는 것을. 그것이 내 ..
올여름 산세베리아는 제철을 만난 듯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 산세베리아는 2년 전 겨울에 동생이 남겨놓고 떠난 화초들 가운데 하나다. 동생이 준 산세베리아는 두 포기였는데, 빼빼 마르고 시들거리는, 거의 고사하기 일보직전의, 형편없는 꼴을 하고 있었다. 작년 여름에 조금 자라고 기운도 좀 차린 것 같았지만 여전히 '난 아직 적응 못했어.' 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올여름 갑자기 쑥 자라났다. 그리고 각각 어린 싹들을 한 포기씩 더 꺼내 놓았다. 마침내 이곳을 내 살 곳으로 인정하겠다는 듯이. 산세베리아는 올 여름 무려 54일간 이어진 긴 장마의 흐리고 축축한 날씨에도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어쩌면 햇살은 그리 필요치 않고 대기 중 습기가 많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 동생이 돌아와서 이 산세베리..
분꽃이 핀 모습은 잘 보기가 어렵다. 저녁부터 꽃이 열리는 분꽃은 한밤중이나 이른 새벽이 아니면 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볼 수 없다. 이른 새벽에 나가서 꽃밭에 분꽃이 핀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 나는 분꽃하면 멘델의 법칙밖에 떠올리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친구가 들려준 어머니 이야기는 분꽃을 볼 때마다 되새김질하듯 떠올리게 된다. 친구 어머니는 앞마당에 피어나는 분꽃을 보고 저녁밥을 지었다고 한다. 친구가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그래서 친구는 분꽃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릴 것이 분명하다. 내 어머니와 함께 기억하는 꽃은 코스모스 밖에 없다. 내가 어머니께 어떤 꽃을 좋아하느냐?고 묻지 않았다면 어머니와 얽힌 꽃 기억이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워낙 청소와 정리를 잘 했던 어머니에게 ..
긴 장마가 물러나고 한낮의 기온이 33도에 이르는 무더운 날이 시작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해야 할까? 코로나 19의 확진자가 하루 300명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났고 전염병의 기세는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바깥 외출이 두려운 하루하루가 다시 시작되어 우울한 나날이다. 열알레르기,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30도가 넘는 한낮에는 바깥 외출이 힘들다. 오전이나 오후에는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게 되니 산책이 불안하다. 할 수 없이 새벽에 하천가로 나섰다. 6시가 못 된 시간, 박무가 있는 새벽이다. 파란 나팔꽃이 웃는다. 미국 나팔꽃이다. 오랫동안 내린 장마비로 잎은 병이 들었지만 꽃의 미소는 여전하다. 반갑다. 파란 달개비의 푸른 빛도 상큼하다. 잎은 벌레들에게 뜯겨 구멍이 송송 뚫렸어도 꽃..
행운목 곁에 돋아난 이 녹색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행문목의 싹인 것 같다. 그동안 그리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장마비가 계속되는 동안, 이 어린 싹이 조금씩 조금씩 살그머니 자랐나보다. 햇살이 없어서 덩굴식물은 병이 들고 썪기도 했지만 오히려 행운목과 벤자민은 더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런 싹도 자란 거겠지. 장마비가 준 선물인가? 혼자 생각해 보았다. 장마비가 떠나면서 안겨다 준 어린 싹으로 생각해야겠다. 이 어린 싹은 정말 올여름의 행운이다.
출판사 '오후의 소묘'에서는 계속해서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책을 출간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노래하는 꼬리]라는 그림책이 나왔다. 노래하는 꼬리? 제목부터 궁금해진다. 아주 작은 마을에 사는 꼬마 이반에게 어느날 갑자기 꼬리가 자라났다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는 상상력을 풀어놓는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를 더 빛나게 하는 데는 비올레타 로피즈의 그림이 한 몫하고 있다. 무채색의 뎃생에다 붉은 색을 가미했다. 그래서 붉은 색이 강렬한 효과를 낳았다. 내용의 정서를 잘 담아내는 비올레타 로피즈의 그림들은 이번에도 당혹스러운 상황의 분위기를 붉은 색으로 잘 표현했다. 그런데 도대체 노래하는 꼬리는 무엇일까? 낯설어서 당혹스럽지만 유쾌한 느낌을 준다. 결국 이 낯선 꼬리는 작은 마을 사람들 모두를 행복하게..
어제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파란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무 아래 빽빽히 자라있는 강아지풀이 눈에 들어왔다. 강아지풀은 내가 좋아하는 풀이기도 하지만 봄에만 해도 여기에는 민들레, 선씀바귀 꽃들이 피어 있던 곳이었다. 8월에는 강아지풀이 이 자리를 차지했네. 도시의 가로수 곁 비좁은 땅에 계절따라 자리를 나눠쓰면서 이렇게 수많은 생명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이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강인하고 끈질긴 풀의 생존력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생명이 아름답다. 언젠가 다들 생명을 소진해 죽음을 맞더라도 말이다.
올해 무화과는 처음이다. 겉이 녹색인 걸 보니 완숙 무화과는 아니다. 배달로 받는 무화과는 거의 항상 덜 익은 상태로 온다. 무화과를 반으로 잘라보니 속이 붉고 붉은 부분을 감싸는 흰 부분, 그리고 녹색의 겉껍질. 보기가 좋다. 한 입 베어무니 역시 완전히 익은 무화과가 아닌 풋익은 맛이 난다. 그래도 향긋하고 은은하게 달콤하고 부드럽고 물기가 많다. 나는 한 해에 한 번 무화과 맛을 보고 간다. 프랑스 기숙사 정원의 무화과 나무에 대한 추억 때문이랄까. 친구들과 무화과 나무 아래 놓인 테이블에 둘러앉아 수다를 떨다 보면 농익은 무화과가 테이블 위로 뚝뚝 떨어지곤 했다. 그때 나눠 먹었던 무화과의 달콤한 맛에 대한 행복한 기억은 지금도 내 몸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이후 더는 그런 맛의 무화과를 맛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