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주박 덩굴 흰꽃

요즘 아침마다 베란다 창을 열고 파란 나팔꽃은 피었는지, 하얀 표주박꽃은 피었는지 살펴보곤 한다. 

작년 봄부터 가을까지 파란 나팔꽃을 세는 것이 아침의 의례처럼 되었었는데, 올 여름에는 파란 나팔꽃은 열심히 세지 않고 피었나 피지 않았나 확인만 하고 내 관심은 온통 표주박꽃으로 이동했다. 

표주박 씨 하나에서 싹이 든 덩굴이 베란다 천정을 덮었다. 

올해는 나팔꽃 씨를 여러 개를 뿌렸기에 나팔꽃 덩굴은 작년보다 더 많고 무성해졌다. 

그런데 장마비가 길어지는 바람에 햇살이 부족해서인지 나팔꽃도 표주박꽃도 피질 않고 잎까지 병들기 시작하자 올해 덩굴꽃 보기를 포기했었다. 포기하고 나니 덩굴을 돌보지 않게 되고 덩굴은 마음대로 뒤엉켜서 정글을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갈색빛의 낯선 무엇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병든 잎이 시들어 쪼그라 든 것인줄 알았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꽃이 시든 것이었다. 사진 속에서도 볼 수 있는 표주박 덩굴의 시든 꽃이었다. 나의 무관심 속에서 표주박 덩굴은 꽃을 피우고 그 꽃은 또 조용히 시들고 있었다. 

나는 다시 덩굴을 돌보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나팔꽃 덩굴도 몇 송이 되지 않는 파란 꽃을 피웠고 표주박 덩굴도 한, 두 송이의 흰 꽃을 피웠다. 표주박 덩굴의 흰 꽃은 마치 하얀 레이스실로 뜬 것처럼 하얗게 하늘거렸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표주박 덩굴의 흰 꽃은 내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나팔꽃처럼 금방 갈색빛을 띠면서 시들고 말지만.   

대부분의 표주박 꽃은 열매를 맺지 못한 채 져버렸다. 그만큼 햇살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장마비는 아직도 끝이 나질 않고 있다. 

그동안 겨우 맺은 표주박 열매도 갈색으로 썪어버렸다.

비가 야속하다.

취미삼아 키우는 표주박 덩굴이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고, 또 맺은 열매조차 썩어버리니 속상한데, 농부들의 마음은 길어지는 장마 때문에 타들어갈 것만 같다.  

올여름 표주박 덩굴의 열매까지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싶다. 넓적한 표주박 덩굴의 잎, 그리고 하얀 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리고 비조차 무더운 여름의 기세를 꺾어줘서 덥지 않은 여름을 보낼 수 있으니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햇살이 그립다.